
2013년 마차를 타고 지나갔던 바간의 골목, 인레 호수 위를 가르던 배,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의 미얀마 현실이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미얀마는 2021년 군부 쿠데타를 기점으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고, 현재는 외교부가 일부 지역을 여행금지 4단계로 지정할 만큼 위험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쿠데타 배경과 내전의 구조
제가 미얀마를 여행했던 2013년은 민주화의 기대감이 막 피어오르던 시기였습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변화를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대가 2020년 총선에서 NLD의 압승으로 이어졌지만, 군부는 이를 부정선거라고 규정하며 2021년 2월 쿠데타를 단행했습니다.
여기서 NLD란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약자로, 1988년 창당된 미얀마 최대 민주화 정당을 의미합니다. 수십 년간 군부의 탄압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상징해 온 정치 세력입니다.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민주 진영은 임시 정부 성격의 국민통합정부(NUG)를 구성했고, 군사적 대응을 위해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했습니다. 여기서 PDF란 People's Defence Force의 약자로, 쿠데타에 저항하는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무장 저항 조직입니다. 기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미얀마 내전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미얀마의 내전 구조는 사실 1948년 독립 이후 이어져 온 오랜 갈등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원래는 버마족 중심의 중앙정부와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무장단체(EAO, Ethnic Armed Organizations) 간의 대립이 주된 갈등이었습니다. 그런데 2021년 이후 여러 소수민족 EAO가 NUG와 연대하거나 반군부 전선에 합류하면서 갈등 구도가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현재 미얀마 내전의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군부 정권(SAC):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사평의회로, 우월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주요 도시 지역 통제를 유지 중
- 국민통합정부(NUG)와 시민방위군(PDF): 민주 진영 임시 정부와 무장 저항 세력
- 소수민족 무장단체(EAO): 일부는 NUG와 연대, 일부는 독자 노선, 일부는 기회주의적 협상을 반복
2023년 말까지는 저항 세력이 미얀마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며 군부 붕괴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소모전(Attrition Warfare) 전략으로 버텼습니다. 소모전이란 직접적인 결전 대신 상대의 전력과 의지를 서서히 갉아먹는 방식으로, 군부는 여기에 우월한 공군력과 저항 세력 내부의 분열을 적극 활용했습니다(출처: Britannica).
국제사회 반응과 미얀마의 현재
국제사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하면 '각자의 이해관계대로'였습니다. 아세안(ASEAN)은 사태 해결을 위한 5개 항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이행 압박 수단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5개 항 합의란 즉각적인 폭력 중단, 모든 당사자 간의 건설적 대화, 인도주의적 지원 허용 등을 핵심으로 하는 아세안의 중재안입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거의 이행하지 않았고, 아세안도 강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군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고, 유럽연합도 유사한 제재 조치에 동참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미얀마 군부와 국경 무역 및 에너지 파이프라인 등 복잡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어느 편에 서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런 지정학적 복잡성이 얼마나 일반인의 삶과 동떨어진 언어처럼 들리는지 압니다. 하지만 바간에서 저희 가족에게 밤늦게 전통과자를 직접 사다 주었던 여행사 주인, 오빠와 또래였던 마부, 그리고 매해 겨울마다 그곳을 찾던 미국인 노부부까지, 저는 그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국제정치의 추상적 언어가 실은 누군가의 일상과 직결된다는 걸 다시 실감합니다.
현재 미얀마는 내전에 더해 취업사기와 납치, 인신매매 등 조직범죄까지 급증하면서 치안 공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미얀마 일부 지역을 여행금지 4단계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4단계란 '여행금지' 등급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방문 자체가 금지되는 가장 높은 위험 단계입니다(출처: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인레 호수 위에서 한 발로 노를 저으며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의 모습, 물 위에 조성된 수상 농원에서 채소를 키우던 농부들의 풍경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온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곳에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얀마의 상황이 지금 당장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군부와 저항 세력 모두 전면적인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국제사회의 중재도 힘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혼란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이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멀리서나마 지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이 끝나는 날, 바간의 정원에서 다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 https://www.britannica.com/event/Myanmar-Civil-War
https://www.0404.go.kr